역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위안부] 하버드 교수들 화났다…"위안부=매춘부 논문 철회돼야" 헤드라인 하버드 교수들 화났다…"위안부=매춘부 논문 철회돼야" 본문 [사진 제공 = 반크]하버드대 교수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주장한 동료 마크 램지어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카터 에커트 교수와 역사학과 앤드루 고든 교수는 1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학문적 진실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커트 교수와 고든 교수는 각각 한국사,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학자다. 다음달 국제법경제리뷰라는 학술지 3월호에 실릴 이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는 일본 정부나 일본군이 아닌 모집업자의 책임", "위안부는 돈을 많이 벌었다" 등의 주.. 더보기 [고대]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헤드라인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본문 [고구려사 명장면-117] 665년 10월 24일 고구려 보장왕의 태자 복남(福南)이 당의 낙양에서 당 고종을 조회하였다. 662년 3월에 소정방의 대군이 평양성 공격에 실패하고 참담한 패배를 안고 돌아간 지 불과 3년 반 남짓 뒤였다. 당이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공격했다는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에 고구려 태자가 당의 낙양을 방문할 정도로 적대적인 두 나라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던 것일까? 당 태종이 직접 원정에 나섰던 645년부터 20년 동안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던 두 나라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의아할 정도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