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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구려, 찬란한 황금문화 꽃피우며 부국강병 이뤄내 헤드라인 고구려, 찬란한 황금문화 꽃피우며 부국강병 이뤄내 본문 역사 산책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39) 황금의 나라 고구려 금목걸이·직경 0.2㎜ 정교한 금실, 병사 갑옷에도 금도금 평양 역포 진파리 6호분에서 발견된 금동 해모양구름무늬 뚫음새김 장식품 광개토태왕이 400년에 보병과 기병 5만 명으로 남진한 이후, 신라와 가야는 고구려의 기술을 습득해 비로소 기마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래서 부산의 복천동 11호분이나 함안의 말이산 고분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철제갑옷, 철제투구, 말투구, 말방울, 말갑옷 등의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고구려의 뚫음무늬 금관 평양 대성구역 청암리에서 발견된 불꽃 문양 금동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말한다. 아름답고, 뛰어난 금관들이 6점이나 발견됐기 때문이다... 더보기
[고대]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헤드라인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본문 [고구려사 명장면-117] 665년 10월 24일 고구려 보장왕의 태자 복남(福南)이 당의 낙양에서 당 고종을 조회하였다. 662년 3월에 소정방의 대군이 평양성 공격에 실패하고 참담한 패배를 안고 돌아간 지 불과 3년 반 남짓 뒤였다. 당이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공격했다는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에 고구려 태자가 당의 낙양을 방문할 정도로 적대적인 두 나라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던 것일까? 당 태종이 직접 원정에 나섰던 645년부터 20년 동안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던 두 나라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의아할 정도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