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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경이로운 신라 금박유물 '미스터리'(종합) "불가사의·공예기술의 극한" 평가 나올 만큼 세밀한 문양 학계, 제작 기법·용도 주목…조사단 "쇠붓 사용·종교 공헌물" 추정 © 제공: 연합뉴스금박에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그린 8세기 화조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건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요. 레이저 같은 현대 장비로 제작할 수 있는지도 실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섬세한 무늬는 현미경을 보고 해도 못 만들어요. 불가사의할 정도의 작업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조각장 김용운 보유자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나온 8세기 신라 유물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에 대해 "현대 장인도 실물 재현이 불가능한 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한 가로 3.6㎝, 세로 1.17㎝ 유물은 .. 더보기
[고대]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헤드라인 고구려 태자가 당의 태산 봉선의례에 참가한 이유는? 본문 [고구려사 명장면-117] 665년 10월 24일 고구려 보장왕의 태자 복남(福南)이 당의 낙양에서 당 고종을 조회하였다. 662년 3월에 소정방의 대군이 평양성 공격에 실패하고 참담한 패배를 안고 돌아간 지 불과 3년 반 남짓 뒤였다. 당이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공격했다는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에 고구려 태자가 당의 낙양을 방문할 정도로 적대적인 두 나라 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던 것일까? 당 태종이 직접 원정에 나섰던 645년부터 20년 동안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던 두 나라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의아할 정도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