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친구에게서 다급한 카톡이 하나 왔다.
자기가 영화를 하나 봤는데 꼭 나도 보라며 추천해주는 카톡이었다. 그 영화는 '소울(Soul)'이었다.
굉장히 친하지만 평소에 서로 읽씹도 자주 하면서 정말 할 말만 하는 사이인데, 바로 직전 카톡을 안읽씹했음에도 나에게 추천한 것을 보니 심상치 않은(?) 영화인듯 해서 바로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엄마랑 데이트도 할 겸 함께 영화를 보고왔다.
'소울'은 내게 위로였다.
우선 내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다.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회사에서 지독한 번아웃을 경험하고 퇴사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사실 난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퇴사를 하면 세상이 밝고 세상의 모든 기회가 내게 주어질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퇴사하면 모두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3개월은 내게 푹 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활동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2.5단계로 방역이 강화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만 지냈다.
원래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집순이지만 목적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취업이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마음이 점차 솜뭉치에 물을 적신듯 쇳덩이처럼 무거워져만 갔다.
'나는 더 밝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나왔는데, 이 모든 것이 사실 실패의 시작이고 내 인생이 무의미해지면 어떡하지?'
이런 나를 '소울'이 감싸주고 위로해주었다.
영화 초반, 나는 영혼들이 가지고 있는 불꽃(spark)에 의해 채워지는 마지막 칸은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하다가, 사진을 찍다가 불꽃이 생겨 칸이 채워지는 장면들이 연출되었으니까. 그래서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 나는 저 기본적인 부분조차 지금 가지고 있지 않구나. 어떻게 해결하지?'
하지만 불꽃은 '적성'이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였다.
'Your spark isn't your purpose. That last box fills in when you're ready to come live.'
마지막 칸은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영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였던 것이다. 역사책에 나올 법한 유명한 업적을 남길 적성이 아닌,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세가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위대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이 소중해'
물론 내 삶이 즐겁고 생동감있게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꿈'이 있어야한다.
최근의 나라면 꿈을 찾는 것에 대해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을 보고난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늘 추진력 있게 꿈을 쫓아왔다. Why not now?
하지만 꿈이 내 인생의 최종 정착지가 될 수는 없다. 왜? 꿈조차도 내 삶의 일부니까.
'소울' 안에서는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도로타 윌리엄즈가 주인공 조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젊은 물고기는 본인이 현재 있는 물 말고 바다에 가고 싶어했기에 늙은 물고기에게 바다에 가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늙은 물고기는 '지금 너가 있는 곳이 바다다'라고 말해준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얘기하면서 스스로 깨달았다.
젊은 물고기는 자신의 현재 처지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물'을 떠나 이상의 세계인 '바다'로 가면 자신의 걱정과 문제들이 마법처럼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늙은 물고기에게 바다로 가는 길을 물어봤는데 이미 젊은 물고기는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불만족스러워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이상을 쫓아가고자 하지만, 어찌하든 이 모든 것은 나의 '삶'이라는 것. 불만족스럽던 만족스럽던 모두 내 삶의 일부이고 목표를 좇아 이룬다고 한들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미친듯이 노력하여 꿈을 이룬 사람들이 오히려 허무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꿈을 이루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에.
나는 머리가 멍했다.
지금 딱 나의 상황과 동일하다. 나는 현재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돌파구로 '취업'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취업을 하고난 후에도 내 삶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목표와 목적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즐기고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22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삶의 목적을 찾았던 것일까?
내가 더 유능해져서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그런 세속적인 목표가 아닌, 머리 위에 내리쬐는 따스한 볕 사이로 떨어지는 낙엽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22는 느꼈던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도 충분히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가 많았다.
눈이 오는 날 무작정 짐을 싸서 통창 유리가 있는 카페에 가서 눈만 감상하기, 눈밭에 누워서 하늘 응시하기, 눈에 찍힌 두루미 발자국을 보며 좋아하기, 조카를 품에 안고 잠드는 모습을 감상하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절로 풍족해지는 하루들을 최근에 많이 경험했다.
내 삶은 아름다운 것으로 둘러싸여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몰랐던 것 뿐이다.
그러니 아직 취직이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주눅이 들거나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계속 떨어진다면 당연히 우울하겠지.
하지만 나는 '소울'이 내게 준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한 나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소울'에 나온 주옥같은 대사들을 여기에 남기면서 글을 끝맺겠다.
'Life is full of possibilities. You just need to know where to look.'
'How are you going to spend your life?'
'I'm not sure, but I do know I'm gonna live every minute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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